서이갤러리에서는 2021년 11월12일부터 12월4일까지 '숨 쉬는 벽' 전시를 개최합니다. 8명의 젊은 작가들이 한국 전통가옥의 미를 가미한 스위스대사관 건물을 사유하여 작업화한 이번 전시는, 예술을 사랑한 주한 스위스대사관(대사 리누스 폰 카스텔무르)의 후원과 중앙대 천경우 교수의 큐레이팅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시각으로 탄생 된 이번 전시에 많은 관심과 관람 부탁드립니다.
허물어지는 벽, 숨쉬는 벽
노력의 결실인 사유(思惟)만이 전해질 수 있다. -르 코르뷔지에
하나의 건축물 안에는 보이지 않는 의식(意識)들이 흐르고 있다. 이 의식의 조각들은 서로 다른 사람들의 마주침과 기억의 축적을 통해 비로소 형태를 갖게 된다. 한 국가 안의 다른 나라, 대사관은 공존과 역설의 상징과도 같은 장소이다. 그리고 서로 마주한 국가 간의 관계에 따라서 친근하기도 하며, 때로는 경계(警戒)의 대상이 되거나 새 희망을 찾는 이들의 출구가 되기도 한다.
「Breathing Walls」는 한옥을 재해석하여 설계한 스위스대사관의 건축과, 장소성으로부터의 영감을 바탕으로 한 사진이자 북 프로젝트이다. 한국의 젊은 사진가 8명에게는 대사관의 모든 공간과 구성원을 대상으로 자유로운 창작의 조건이 주어졌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쳐 각자의 구상과 공간에서의 경험을 통해 사진 매체에서만 가능한 고유한 이미지들이 표출되었다. 작품에 참여한 구성원들에게는 기능적인 일상의 공간을 새로운 시각과 농도로 인식할 가능성이 생겼고, 외부 방문객들에게는 익숙한 공간의 낯선 이미지들로 인해 상상력으로 각색된 새로운 기억이 추가되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존재를 알지만 다가가기 어려운, 가까운 미지의 공간인 대사관은 경직되고 근엄한 옷을 벗고 창작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예술공장과도 같은 역할을 자처하였다. 이러한 개방적인 조건들은 우리가 갖고 있는 한 국가, 대사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편견과 획일적인 상징들로부터 자유로울 기회를 제공한다.
사진 속 이미지는 멈추어 있지만 한 장의 사진은 우리의 지각과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참여 작가들은 공통적으로 중앙대학교에서 매체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며 사진을 전공한 젊은 작가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론에 따라 숨겨진 지하 공간을 지상으로 끌어낸 일시적 설치를 통해 혼합된 공간을 연출하거나, 밤과 낮의 다양한 시점-이미지 레이어의 축적으로 구현된 초현실적 이미지를 완성하였으며, 작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대사관에 존재하는 사물들로 공간을 일시적으로 변형시켰다. 또한 대사관 구성원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시킴으로써 눈으로 보이지 않던 고유한 동선을 드러나게 하여 하나로 연결하기도 하고, 고향집을 그려서 대사관 하늘의 별 같은 형상이 되도록 하였다. 이렇게 전통적 기법을 넘은 새로운 표현방식, 공간의 재발견을 위한 노력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대상과 개념에 대한 인식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들이며, 경계를 넘을 준비가 된 이들에게는 새로운 자신과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
북 프로젝트의 중심은 ‘참여’이다. 새 사진들과 글귀가 모이는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은 위험요소를 함께 수용하겠다는 주최자의 의지이자 작가들의 기회이다. 다양한 배경의 참여자들이 보내온 우연의 조합이 된 글귀들은 선별되지 않았으며, 기억을 되새기며 의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간이 존중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한 첫 만남에서 우리는 매우 빠르게 공감하며 손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성이 담긴 하나의 오브제로서의 책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매일 마주하는 액정 뒤가 아니라 공간 체험으로서의 종이 책, 사진을 담은 책을 만드는 일은 하나의 집을 짓는 것과도 같으며 책장들의 안무를 하는 일과도 같다. 목재로 가득한 인상적인 대사관의 큰 공간이 다양한 해석을 통해 사진으로서 손안의 작은 공간들로 연결되며, 사진가와 참여자들의 행위가 가득 담긴 이 책의 책장들은 움직이는 벽이 되기도, 문이 되기도 한다. 완성된 사진들은 책과 함께 대사관의 안과 밖에서 전시를 통해 설치되며 제한된 기간이지만 실제 작품과 같은 공간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포토북의 성격을 띤 이 책은 오롯이 독자 혼자와 사적인 만남이 가능하며 그것이 인터넷 시대에 더욱 드러나는 포토북의 가치이기도 하다.
기억은 우리가 본 것들의 울림이다. 19세기 사진의 발명 이후 인간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인식하는 새로운 기억의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 책에 담긴 실험적인 사진 이미지들은 공간의 새 기억을 만들어 낼 것이다.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로운 관계가 숨쉬는 공간.
천경우 | 작가, 중앙대학교 교수